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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유시 참변을 아십니까? 조형곤 역사정립연구소 소장 2016.07.29 http://www.futurekorea.co.kr/news/articleView.html?idxno=31987


자유시 참변을 겪고 임시정부는 모두 반공(反共)으로 돌아섰으며, 이때부터 독립투사들은 국제정세에 눈뜨면서 글로벌 독립전쟁 펼쳐. 그 주인공이 이승만


조형곤 역사정립연구소장은 자유시 참변 95돌을 맞아 지난 6월 24일에서 7월 2일까지 이상면 전 서울대 법대 교수, 김규민 영화감독, 조성희 전북학부모연합 대표 등과 함께 역사의 현장을 탐방하고 귀국했다. 일행은 대한독립군단이 95년 전 걸었던 그 길을 따라 걸으며 대한독립군단의 투쟁사와 자유시 참변의 현장을 답사했다. 조형곤 소장의 기행문을 두 차례에 걸쳐 게재한다.


1921년 6월 28일 러시아 스보보드니(자유시)에서 일어난, 대한민국 독립전쟁사에서 가장 큰 참극이 자유시 참변입니다. 자유시 참변을 이해하려면 먼저 그 무렵의 국제정세를 살펴봐야 합니다.


피로 물든 1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나온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식민지 조선 사람들은 크게 기뻐했습니다. 지구마을을 놀라게 한 3·1 만세는 곧 그 환영사에 다름 아니었습니다(수유리 봉황각에 가보셨습니까. 조선의 지도자들은 이미 1912년부터 7년 동안 3·1 만세를 준비해왔습니다. 아직 가보지 못한 분들은 꼭 가셔서 삼가 옷깃을 여미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 지도자들은 곧 크게 실망합니다. 그 민족자결주의는 1차 대전의 승전국인 일본의 식민지 조선과는 아무 상관이 없었습니다. 패전국인 독일과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오스만 투르크 등이 가졌던 식민지를 영국과 프랑스 같은 다른 열강들이 차지하게 못하도록 하려는 움직임이었을 따름입니다.


오히려 1차 대전 끄트머리에 터져 나온 볼셰비키 쿠데타(러시아 혁명이라는 운동권 용어를 이제 그만 썼으면 합니다)를 핑계로 연해주를 넘어 시베리아까지 파고든 일본군들 탓에 독립전쟁의 상황은 더욱 어려워져 갔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봉오동-청산리 대첩은 말 그대로 기적이었습니다. 동아시아의 지도를 바꾼 1894년 갑오전쟁부터 자그만치 사반세기를 승전보를 울리며 군사대국이 된 일본의 정예사단을 식민지 조선의 보잘 것 없는 독립군들이 1920년 6월부터 10월까지 만나는 족족 궤멸시켰으니 일본으로서는 망신살이 뻗쳤을 뿐만 아니라 대륙 침략에 엄청난 걸림돌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일본은 봉오동-청산리 대첩을 이뤄낸 한인 독립군의 뿌리를 뽑으려 만주의 우리 동포들을 학살하는 경신 참변을 일으킵니다. 이에 독립군들은 동포들을 살리려 어쩔 수 없이 밀산으로 옮겨갑니다(밀산에서 만주의 바이칼인 흥개호를 건너면 우수리스크가 나옵니다). 그 곳에서 모두 모여 뒷날의 새로운 독립전쟁을 꾀하며 하나의 군대를 세우니 3500 장병의 대한독립군단이었습니다.



▲ 중국 화룡시에 있는 나철, 서일, 김교현 3종사 묘역. 이 3종사와 대종교는 독립전쟁사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중요성을 가진다.


대한독립군단의 비극


그러나 이때부터 모든 일이 꼬입니다. 일본의 물샐 틈 없는 봉쇄로 개점휴업에 놓인 독립군들은 레닌의 달콤한 선동에 이끌립니다. 대한독립군단의 총재이자 정신적 지도자인 백포 서일과 백야 김좌진 등은 좀 더 때를 기다리자며 말리지만, 마음 급한 이들은 혹시나 하여 국경지대를 따라 스보보드니(자유시)까지 갑니다.


그러나 믿었던 소련 공산당은 약속을 저버리고 한인 이르쿠츠크파 공산당을 내세워 일본과의 밀약에 따라 대한독립군단을 무장해제 했으며, 그에 맞서다 많은 분들이 돌아가시고 살아남은 이들도 이르쿠츠크까지 끌려가 대한독립군단이 아예 와해되어버립니다.


이때부터 독립전쟁은 내리막길로 접어듭니다. 나중에 남북 만주에서 조선혁명군과 한국독립군이 용맹을 떨치지만, 끝내 1920년의 군력(軍力)을 되살리지 못하고 만주에서 대한의 이름을 내건 독립전쟁세력은 1938년 9월 6일을 끝으로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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