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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三聖記 下의 저자 元天錫(원천석)..그의 자취를 찾아서 <무학대사가 잡아준 耘谷(운곡) 元天錫(원천석) 의 묘:원주 판부면>의 전설

▣三聖記 下의 저자 元天錫(원천석)..그의 자취를 찾아서
<무학대사가 잡아준 耘谷(운곡) 元天錫(원천석) 의 묘:원주 판부면>의 전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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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학대사(1327년고려충숙왕14년생)
통정(通亭)강회백(1357년 공민왕6년생):연화부수형 명당에 자리를 잡아준다

:경기 연천군 왕징면 강서리의 묏자리도 무학대사가 잡아 준다.


耘谷(운곡)[元天錫(원천석)의 호]은 어느 것을 원하시오?
재물과 벼슬이 후손들에게 넉넉하기를 바란다면, 의당 그곳 만대 영화지지요.
다만, 그저 탈없이 평화롭게 살기를 바란다면 앞에 보이는 봉요혈(蜂腰穴)이 적격이올시다.“


“봉요혈”,벌의 허리에 해당하는 혈자리인 것이다.
금방 끊어질 듯 가늘지만
그렇게 쉽게 끊어지지 않는 진혈의 허리다.용맥이 흐르다 순간 결지를 했으니 기룡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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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무학대사가 3대 정승이 나는 자리를 쓰겠느냐

아니면 무탈히 자손들이 입신양명을 못하더라도 번창하는 자리를 쓰겠느냐 해서 이 자리를 택했다고 전해진다.


보면 볼수록 신기한 혈자리다.

귀석이 주변에 있어 기의 누수를 막고 있다.

치악산의 한자락이 서남향으로 흘러내린 끊어질듯한 기맥은 잘룩한 목을 지나 본신 안산을 이루며 당판을 단단히 일으킨다. 

벌허리처럼 끊어질 듯한 이 자리에 쓴 이유는 고려말 망국의 상흔과 조선유교국시에 실망하고 출사를 하지 않은 원천석 선생의 소망을 이 혈자리에서 염원한 것은 아닐까.


한민족 국혼과 고유역사가 사라져 가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역사관이 분명했던 태조이방언의 스승이자 고려말 충신 72두문동 현인의 한사람이었던 원천석은  사라져가는 조선의 역사를  삼성기 하를 집필함으로써 이렇게 이어 주었다.


마치 자신이 봉요혈 허리가 끊어질듯한 누가 봐아도 쓰지 않을  풍수학의 절미를 보여주는 이 봉요혈 혈자리처럼 말이다.

후손중에 똑똑한 인물이 나와 벼슬길에 오르는 것을 마다하고, 그저 순탄하고 평화스러운 삶을 살아가기를 바라는 원주원씨 중시조 원천석선생이다. 인문과 역사에 조예가 깊었던 그는 당대의 영화를 구하지 않았다.


혈지에 대하여 대화를 나눈 인물은 무학대사였다.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사건의 배경이다.


원천석은 고려말의 인물이다..

고려말 정치가 어지러워지자 스스로 탄식하며 원주 치악산에 들어가 농사를 지으며 부모를 공양했다.

정계중심에서 한 순간 운명이 바뀐 상황을 그는 어떻게 받아들였을까.


역사를 공부하는 것은 자신을 정립하기 위함이다.


마치 고려말 망국의 패운을 통탄하며 단군세기를 강화도에서 집필한 행촌 이암은 먼 미래를 보며 단군세기를 남긴다.

그도 같은 심정이었으리라. 그도 그런 심정에서 한민족 역사시원의 원형을 기록했으리라,


원천석은 호는耘谷 (운곡)이고 태종 이방원의 스승이다. 당대 최고의 지성인이었다. 

원천석은 춘추전국시대  晉(진)나라의 직필하던 사관이었던 ,董狐(동호)를 존경하여 자신의 필명을 董仲(동중)이라 하였다 한다.

의미를 해석한다면 동호란 인물에 버금한다.

그의 필명에서 사관으로서의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 대쪽같은 중도심법을 엿볼 수 있다.

威勢(위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실을 그대로 直筆(직필)하였던  곧고 충직한 사관이었다.

진의 사가 동호를 존경하여 자신의 호를  동중이라 했다고 한다.

도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실(史實)을 바르게 기록(記錄)했다하여, 董狐直筆(동호직필)이란 사자성어가 전한다


고려왕조가 망하자,그는 뒷담을 끼고 돌아보듯 쇄망을 나귀의 말발굽으로 짚어가며 한수 시를 읊조렸다..


“흥망이 유수하니 만월대도 추조로다.
오백년 왕업이 목적에 부쳤으니
석양에 지나가는 객이 눈물겨워하노라“


그런데,흥미로운 것은 무학대사와의 만남이다.

어떻게 조선의 왕사가 고려의 충신과 한자리에서 앉아 있을 수 있었는가.
그것은“충신은 두임금을 섬기지 않는다”는 운곡 원천석의 행동 때문이었다.


어떻게 살것인가는 스스로 선택을 하는 것이리라.

어떤이는 당대에 살고 역사에서 죽는 이도 있다.
왜 깊어질수록 역사적 삶을 선택하는지는 스스로 깨우쳐야 하리라.


일찍이, 이방원(태종)은 왕자시절 운곡 원천석에게 글공부 가르침을 받은 바 있기 때문에 이방원이 즉위한 後 중임을 하려고 원주에 자주 찾아 왓으나, 그때마다, 산속으로 몸을 피하고 만나주지 않았다.


왕은 계곡에 있는 바위에 올라앉아 집을 지키는 할머니에게 선물을 주고 돌아갔다.

훗날 그바위를 태종대(太宗臺)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운곡이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던 것은 고려왕조에 대한 충의(忠義)였음을 그가 남긴 “운곡시사(耘谷詩史)”라는 문집으로 짐작 할 수 있다. 대표적인 시의 제목을 보면, 최영장군을 기리는 것과 우왕, 창왕이 신돈의 자식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는 내용이다.

치악산에 은거하면서,운곡은 여섯권의 야사를 집필했다.


그는 죽음에 임하여 후손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죽으면 이것을 가묘에 잘 간수하도록 하라”라는 유언을 남겼다.
후에 유언은 지켜졌으나, 증손자때에 책의 내용을 살피다가 혼겁하여 태워버렸다고 한다. 그런데 원천석(원동중)이 지은 삼성기하가 세조실록에 전한다.


◉세조실록-사서수거령에 수거된 목록에 기록된  고유사서목록 (환단고기 고증).

팔도 관찰사(八道觀察使)에게 유시(諭示)하기를,

“고조선비사(古朝鮮秘詞)·
대변설(大辯說)·
조대기(朝代記)·
주남일사기(周南逸士記)·
지공기(誌公記)·
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
안함노 원동중 삼성기(安含老元董仲三聖記)·


여차하여 그런 책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조정에서 알게 되면 멸문을 당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였기 때문이다.


이성계의  조선에 와서는 그 아들 되는 태종 이방원이 유교의 가르침 국시와 역사관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서운관에 있었던 우리 전통 역사서를 다 불질러버렸다.

유교국시이념에 어긋나면 닉자처참匿者處斬이란 왕명이 기록돼 있다. 우리 고유사서를 숨긴 자는 목을 벤다는 것이다. 이게 조선왕조실록에 있는 기록이다. 그래서 역사사서를 가지고 있을 수도 없고, 읽을 수도 없었다.


머릿속에 역사관이라는 것은 불교사관, 유교사관, 이것이 이조 오백년을 내려오면서 결국은 우리 역사를 일본에게 다 내주고 노예민족으로 전락을 했던 것이다. 주체성이 결여된 이런 사대주의 국시는 국난의 위기에 민족가 국가가 사분오열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구한말 외세에 휩쓸리던  그 중심에 근대 역사의 문을 연 동학 혁명 농민군들의 절규는 이러한 동방역사외 외세침탈에 대한 저항이자 국혼 부활의 외침이었다.


조선시대 유교국시에 어긋나면 斯文亂賊(사문난적)으로 잡혀서 죽임을 당해야 했던 것이다.

원천석은 무학대사와는 세살터울 아래이며,나옹 화상과는 열 살 차이가 난다.

“고려사”에 의하면,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등과 모두 금문책(金門策 :과거)을 꿰뚫은 동문들이다.

고대문자나 고대사에 달인들이었던 것이다.


치악산에 들어간 것은 이성계가 위하도 회군할 무렵일때였는데 그는 정치에 대한 회의감이 너무 강했다.
그가 누워 있는 묏자리는 무학대사의 선물이었다.

묏자리가 입향 방위가 풍수법상 하나도 어긋남이 없는 것은 무학대가 얼마나 심혈을 기울여 선택했는가를 실감나게 보여 주고 있다.
형국으로는 포은 정몽주나 목은 이색의 산소보다 국세를 잘 맞추어 있다.


포은 정몽주는 속으로 정가 세상을 꿈꾸었다하니 땅은 사람의 마음을 읽어서일까.

천지는 진실을 알고 참된자손에 복을 내리는가보다.


특히 ,이곳은 사세가 일품이라고 풍수사들은 입을 모아 칭찬한다.

백호 줄기의 산에 올라서 “봉요혈“을 내려다 보면 마치 한 마리 벌이 꿀을 따먹기 위해 꽃속으로 들어가는 형국처럼 생겼다.

조화치고는 너무 완벽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원천석 생애의 청고한 삶과 가치를 풍수학에 소망을 담았으리라.

그는 한민족 역사의 부활을 염원하였음을 묏자리나마 말없이 깊은 뜻을 전하고 있는 듯하다.


운곡 원천석은 강원도 횡성 칠봉서원(七峯書院)에 제향 되어 있다.

국말국초의 변동기에 그는 고려의 충정을 지키고자 한 조선초의 은사(隱士)였다.
그는 금문과 고서의 대가였다. 그의 사후 손자가 가묘를 개장했을때 조선 유교사학하고는 대립되는 한민족 고유사서였다고 전한다.


원동중은 원천석이다. 당시 자신의 이름을 은닉하면서 동시에 대쪽같은 사관이었던 동호를 존경해서 필명을 동중이라 하여 자신이 원천석임을 알지 못하게 하여 자신의 후손이 후세에 멸문을 당하지 않도록 한 배려였음이라.그는 삼성기하를 전해 한민족 국통의 계보를 전하신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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