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화도 삼랑성에서 역사의 흔적을 찾다.
삼랑성(정족산성)은
처음에는 토성이였으나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막돌을 맞추어
가며 튼튼한 석성으로 축조 되었습니다.
성안에는 전등사를 비롯한 고려시대의 궁궐을 지어 몽고에
대항하였고 조선시대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하던
사고와 왕실족보를 보관하던 선원보가 있었습니다.
아래의 삼랑성 전설의 자세한 진실은 [환단고기] <단군세기>에 자세히 실려 있습니다.^^
강화도 마리산 참성단과 삼랑성의 유래를 밝혀주는 환단고기
http://www.hwandangogi.or.kr/hwan/community.php?mid=142&r=view&uid=980
[강화도 마니산에 제천단 참성단이 있어 역사적으로 각 왕조마다 해마다 천제를 지내온 바,
그 첫 기록이 환단고기 단군세기 단군왕검 무오 51년(BC 2282년)에 쌓았다는 것이 나온다.
마니산 참성단은 서울올림픽, 월드컵축구와 전국체전 성화채취의 기본 성지가 되고 있다.
일찍이 광개토열제도 말타고 순행하여 마리산에 이르러 참성단에 올라 친히 삼신상제님께 천제를 올렸다(고구려국본기).
태백일사 신시본기에는 “산꼭대기에 땅을 파서 성단을 만든 것을 천단이라 하고 산골짜기에 나무를 세워 토단을 쌓은 것을 신단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재위 51년 무오(단기51,bce 2283)년에 왕검께서 운사 배달신에게 명하여 혈구에 삼랑성을 건설하게 하시고 마리산에 제천단을 쌓게 하시니 지금의 참성단이 곧 그것이다.]

삼랑성 안내문 에는 삼랑성은 단군의 세 아들이 성을 쌓았다고 되어있으나 환단고기에 의하면 <운사 배달신>이 명을 받아 쌓은 것입니다.
화랑의 뿌리, 삼랑 ^^
http://youth.daehansarang.org/index.php?mid=board_49&document_srl=149383

여기가 이제 삼랑성(정족산성)이에요^^

동문에서 작은 고개를 하나 넘으면 바로 남문(종해루)이 나옵니다.
직선거리로 약 100m정도 되구요.

약 150년 전인 1866년(고종3년) 10월, 흥선대원군의 천주교 학살
탄압을 빌미로 프랑스함대 7척과 최신식 무기로 무장한 600여명의
해병대를 거느리고 강화도에 쳐들어온 로즈제독은 강화성을
점령한 뒤 무기, 서적, 식량 등을 마구 약탈했습니다.
이를 병인양요라고 합니다.
이에 양헌수 장수는 조선군 500여 명과 함께 야밤에 염하강을 건너
강화도로 잠입하여 정족산성을 치고 프랑스군과 일전을 준비하게 됩니다.
조선군이 정족산성에 입성했다는 정보를 입수한 로즈제독이 정족산성
남문과 동뭉으로 공격을 감행했으나 화기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지형상의
유리함을 효과적으로 이용한 양헌수 장수는 프랑스군을 물리쳐 대승을
거두었고, 전의를 잃은 프랑스군은 이틀 뒤 강화도에서 완전히 철수하게
됩니다.
조선이 서양 제국주의 국가와 전쟁을 해서 최초로 승리를 거둔
곳입니다.
병인양요 당시에 프랑스군에 승리한 기념비로서
양헌수 승전비는 아직가지 동문을 지나 전등사 입구에 서 있습니다.
그 전투가 이 남문(종해루)에서 시작됐습니다.
삼랑성 안에 있는 전등사 기둥에 멋진 깨달음의 글들이 있어서 찍어봤어요. ^^